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성의 권리 옹호 (문단 편집) === [[장 자크 루소|루소]]는 틀렸다 === > "난 루소를 자주 인용하고 그의 천재성을 진정으로 부러워하지만, 그 부러움은 항상 분노로 바뀌고, 그의 관능적인 명상을 적은 유려한 문장들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흐뭇하게 미소 짓다가도 그가 여성의 미덕을 모욕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치미는 울화로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 > ...그는 논리적이어야 할 때 감정에 휩싸이고, 그의 생각은 오성을 밝혀주는 대신 상상력에 불을 붙인다. 그가 지닌 장점들조차도 그를 더욱 나쁜 길로 이끌었다. 정열적인 체질과 발랄한 상상력을 타고난 그는 여자를 정말 좋아했고, 일찍부터 아주 음란한 사람이 되었다... > > ...그의 글을 읽을 때 우리는 꿈을 꾸면서도 논리적인 생각을 한다고 착각하고, 거기서 나온 잘못된 결론을 마음 속에 간직한다." > ----- > - pp.63; 163; 164 본서의 5장에서는 루소의 《[[에밀]]》 을 중심으로 하여 당대의 몇몇 사상가들의 [[자기계발서]] 및 이에 영합하는 여성들의 소위 '조언' 을 비판하고 있다.[* 함께 비판하는 문헌으로는 제임스 포다이스(J.Fordyce)의 설교집 《Sermons to Young Women》, 존 그레고리의 《A Father's Legacy to His Daughters》, 체스터필드 경(Lord Chesterfield)의 《Letters to His Son》 이 있으며, 그 외에도 피오치(Piozzi) 부인, 스틸(de Stael) 남작 부인, 장리(Genlis) 백작 부인의 서간들에 대해서도 비판적 코멘트를 남기고 있다.] 물론 그 중에서도 공격의 핵심이 되는 타깃은 바로 [[장 자크 루소]]다. 《에밀》 은 동명의 이름을 지닌 가상의 [[소년]]을 상정하여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문학]] 작품인데, 루소는 이 에밀과 결혼시키기 위한 가상의 소녀로서 '소피' 라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제시한다. 문제는, 루소가 소피를 묘사할 때 '''저자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여성 교육이 불필요하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주장이 간단히 말해서 "유치한 결론"(p.148)이라고 생각한다. 루소가 주장하는 것은, 여성들은 남성을 즐겁게 하기 위해 '''다른 모든 인생의 목표를 포기'''함이 마땅하며, 남성에게 평생 종속되는 삶을 살기 위해 '''연약해지려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벌써 엄청난 [[성차별]]적 발언인데, 루소는 이것이 심지어 [[자연의 섭리]]라고까지 했다. 루소는 남녀가 이처럼 다르므로 남녀가 서로 다른 일을 해야 하며, 여성만의 목표에 맞는 교육을 받고, 여성에게 어울리는 활동을 하며, 신체적으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는, 여성이 루소가 인식하는 그런 모습이 된 원인은 원래 그렇게 타고나서가 아니라 '''세상이 여성을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며, 그 중 일부가 그에 영합하여 "자기를 얽맨 쇠사슬을 껴안고 [[애완견]]처럼 애교를 부리는"(p.150) 모습을 보이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다. 문제는, 루소가 그런 여성을 보면 역시 여성은 천성적으로 복종을 잘 한다며 무릎을 친다는 것(…). 저자가 보기에 루소의 《[[에밀]]》 은 전혀 설득력이 없으며, 독자들이 그에게 설득되는 이유는 단지 루소가 갖고 있는 유려한 문체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루소가 '소피' 를 묘사하는 내용과 그에 대한 반론을 전방위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아래에서 보듯이 현대 기준에서 이런 주장은 어지간한 일반인 관점에서도 "[[꼴통]]"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 '''루소 : "소녀들은 특별히 더 엄중한 통제를 가하여 철저히 복종시켜야 한다"''' 루소는 여성들이 천성적으로 더 방탕하고 경박하며 바람기 심하고 변덕스러우므로 이를 가능한 한 억눌러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여성은 천성적으로 의존적이기에, 남성이 복종을 요구하면 군말없이 따를 것이라고도 했다. 더 나아가, 루소는 여성에게 자유를 주면 안 되는 이유로, 여성들은 무엇을 주면 지나치게 탐닉하고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내놓았으며, 통제받는 삶을 살아야만 착하고 유순한 성격이라는 덕목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래야 남성들의 허물과 결점과 불의까지 묵묵히 참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 저자는 여성이 갑자기 자유를 얻으면 그것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반론한다. 저자에 따르면, "노예나 폭도들 역시 해방된 순간에는 그런 식으로 극단적인 행동에 빠져든다"(p.151). 또한 여성에게만 인내와 유순함을 요구하는 것은 여성이 갖고 있는 [[인권]]을 유린하는 것이며, 덕목으로서의 진정 고귀한 유순함은 이성을 계발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 '''루소 : "남편이 밖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려면 아내가 안에서 유순해야 한다"''' 이 유순함에 더하여, 루소는 설령 여성이 화가 났더라도 그 화를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체하는 식의 '교활한 술수' 가 가정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저자는 이에 대해서, 모욕을 참아넘기는 아내는 훗날 반드시 더 큰 모욕을 받으며, 그것은 [[자연의 섭리]]도 아니고, 단순히 참는 것은 잘해봐야 불의에 대한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반론한다. 또한 화가 났는데도 그 화를 감추고 남편에게 안기는 아내는 혼외정사를 할 때도 그것을 더욱 잘 숨길 수 있을 것이므로, 자신의 감정을 감춘다는 것이 가정을 지키는 데 있어서 절대 좋은 것이 아니라고도 하였다. * '''루소 : "소녀들에게는 남자 홀리는 기술을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 루소는 이 주장을 하면서, 여성이 남성의 마음을 홀리고 농락하는 등의 각종 술수와 교태, 그리고 상대방의 기분을 파악하는 [[눈치]]야말로 여성을 남성과 대등한 짝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남성이 여성보다 육체적으로 강하다 해도, 여성은 그런 남성의 혼을 빼 놓을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진정한 [[평등]]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술수와 교태는 탁월한 정신과 양립할 수 없으며, 남성이 설령 육체적으로 여성보다 우월하다 한들 여성이 참된 지식과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이 불필요하지는 않다고 하였다. 또한 [[완곡어법|눈치 있게 말하는 행위]]는 도리어 남성들의 [[사회생활]]에서 정말 많이 발견되어, 남성들과 대화하다 보면 오히려 진솔하게 하는 말을 찾기가 힘들 정도라고 한다. * '''루소 : "여성은 종교적 권위에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 루소는 소녀들이 종교의 교리를 제대로 이해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여성은 남성으로부터 항상 자신이 무엇을 보아야 할지 배워야 한다고 하였다. 즉, 루소는 여성에게 깊이 있는 [[신학]]을 가르치는 것에 반대했으며, 그들은 그저 단순히 성직자가 그렇다면 그런 줄로만 알면 된다고 하였다. * 그러나 저자는 이처럼 여성들로 하여금 '생각하지 않고 믿는' 신앙을 길러주는 것이 과연 탁월한 남성과의 대화에 어울릴 만큼의 지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반론한다. 이런 여성들은 조금이라도 생각이란 걸 시작하게 되면 곧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깨닫게 될 뿐이라고. * '''루소 : "여성은 남성의 쾌락을 지배하는 권력을 갖고 있다"''' 루소는 아내가 남편의 성적 욕망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어쩌다 한 번씩만 부부관계를 허락한다면 그만큼 남성이 몸이 달아올라서(…) 아내를 오래 사랑해 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 그러나 위에서 설명했듯, 저자는 여성이 남성의 사랑에 '올인' 하는 것 자체에 부정적이다. 사랑은 덧없고 잠깐일 뿐이며, 여성의 외모가 시들면 남성의 성적 욕망 역시 잠잠해질 것인데, 어째서 여성들은 그 잠깐의 사랑을 얻기 위해 평생을 바쳐서 아름다움을 가꾸어야 하는가? 설령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정결하고 현명한' 여성의 행실이라고 불러 주어야 하는가? 그보다는 오히려 지적인 남편을 충분히 내조할 수 있을 정도로 지적인 아내가 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게 저자의 제안이다. * '''루소 : "여성은 천성적으로 인형놀이를 좋아한다"''' 이것은 3장에서 나온다. 현대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보수주의]]자들이 존재하며, 대표적으로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스]](C.H.Sommers)가 있다. * 루소가 여아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루소보다 훨씬 더 여아들을 많이 접해 보았을 저자의 관점에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으며, [[맨스플레인|실제로 여아들이 보고 듣는 것을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억눌린 생활 속에서 장난거리가 없는 무료한 소녀들이나 인형을 좋아할 뿐이었다. 어린 시절에 밖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것에 수치심을 갖지 않았던 명랑한 소녀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뛰어난 지성을 지녔다. 하지만 여성다움을 추구하는 미련한 여성들은 [[성 역할|여성다움에 자기 자신을 끼워맞추기 위한 가식]]만 늘어갈 뿐이라고. 여기까지 보면 독자에 따라서는 저 위대한 [[철학자]] 루소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수도 있다. 이쯤에서 명심할 것은, 분명히 루소는 "인간의 천성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에, 교육을 통해 개인의 이성을 훈련시키자" 는 관점을 따른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백번 지당한 생각이 '''유독 여성에 대해서까지는 닿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루소는 여성이 무지몽매하고 비합리적이며 편협한 상태로 남는 것이야말로 이성적인 남성을 보조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저자의 관점에서는, '''이성적인 여성만이 이성적인 남성을 제대로 보조할 수 있다.''' 무지한 여성 '소피' 는 이성적인 남성 '에밀' 에게는 그저 걸리적거리고 방해만 될 뿐이며, 늘 멸시를 당하고, 그들이 남성을 보조하고자 해도 저 성경구절 말마따나 '장님이 장님을 이끄는' 꼴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잠시 루소를 변호하자면, 루소는 《The Discourses》 와 같은 몇몇 저작들에서 한편으로는 "인구의 절반에게 더 나은 교육을 받게 한다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혜택이 돌아올지 아직도 우리는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있다", "남성들을 위대하게 만들고 싶다면, 먼저 여성들에게 그 위대함을 가르쳐야 한다" 와 같이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단에서 다시 논의되겠지만 루소는 인간의 본성(nature)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에밀》 에서 루소가 여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로서 해석되게 마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루소가 [[양성평등]]에 대해서 나름대로 자신만의 철학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을 내놓고자 했음에도, 결과적으로 저자가 생각하는 여성상과는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